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베 나츠미 (문단 편집) === 모닝구 무스메 시대 === 사실 아베가 센터가 된 비화가 있는데 애초 센터는 [[이이다 카오리]]로 확정되어 있었고, 곡도 이이다의 이미지에 맞는 곡으로 데뷔하려고 했지만, 결정단계에서 이이다의 목상태가 안 좋아 녹음이 미미하게 끝나버렸고, 데뷔날짜를 얼마 안 남기고 아베의 이미지로 변경이 되면서 이이다는 센터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여기서 아베가 틈을 타서 층쿠에게 졸랐다는 낭설이 있지만, 그냥 낭설일 뿐이다. 이후 알려진 소속사의 기획 비화에 따르면, 애초 모닝구 무스메는 아베를 중심으로 하는 보컬 그룹을 만들어보자는 기획으로 탄생된 만큼, 당시 모닝구 무스메 리얼리티를 방송중이던 ASAYAN에서 극적인 전개를 주기위해 동갑내기 경쟁상대로서 이이다를 활용한 것 뿐이지, 센터는 처음부터 아베로 내정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이다만 어린나이에 방송에 이용당하고 마음고생 한 셈이 된다..) 이이다는 그 후로 쭉 코러스, 부메인으로 된다. 그 후 쭉 [[후쿠다 아스카]]와 센터를 맡다가 후쿠다가 탈퇴 후 "한여름에 광선"과 "후루사토(고향)"에서 혼자 센터를 맡지만, 반응은 미미했다. 그 후 [[LOVEマシーン]]으로 추가 멤버인 고토가 바로 센터로 낙점되자 스트레스를 엄청 받게 되었다고 한다. 고토 마키가 들어온 것이 본인에게 엄청난 자극이 되었다고. 그 후로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살이 포동포동하게 찌게되어 만월모드를 각성하여 보는 팬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다만 고토 마키가 너무 부각되어서 그렇지, 아베 나츠미의 인기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고토 마키가 팬덤 1위였다면 아베 나츠미는 대외적인 인지도 탑이었다. 굳이 한국 아이돌계로 비교하자면, 소녀시대 최전성기 시절의 [[윤아]]와 [[태연]] 정도의 관계였다고 보면 된다. 친동생인 아베 아사미 역시 솔로 가수로 데뷔했고, 첫등장은 13위였지만 1~12위가 모두 [[B'z]]의 싱글 재발매였던지라 실질적으로는 2위로 데뷔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